1948년과 1952년 올림픽 platform 금메달 리스트인 Dr. Sammy Lee와 그의 부인인 Roz Lee는 세미 스포츠타올의 창시자이다. 수영복 이외의 어떤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 스포츠(다이빙)에서, 이 작은 타올은 선수들에게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이, 이것은 모든 선수들의 훈련과 시합의 절차가 되었다. 다이빙에서 이 세미타올이 없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이 "Shammy현상"은 1970년대 미국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당시는 Sammy가 아닌 Shammy라고 불리었음)

최초의 세미 타올는 원래 샤무아(CHMOIS)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암염소와 닮은 이 짐승은 유럽과 서아시아의 산에 사는 짐승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샤무아들은 지금은 스위스와 뉴질랜드에서 발견된다. 샤무아는 약 30인치의 키와 100파운드의 중량을 가진다. 피부색은 변했지만, 모든 샤무아는 그들의 검은 꼬리와 검은 등의 스트라이프와 함께 그들의 얼굴에 흑백의 점을 가지고 있다.
세미 타올이 처음 물에서 쓰여진것은 19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연 동물 가죽으로 만든 흡수능력은 노르웨이나 다름 유럽의 다이버들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합성 (인조)방식은 늦게 일본에서 발명되었다. 천연가죽이나 인공제조된 것이든, 그것은 수십 년간 표준이었던 거추장스러운 큰 타월을 빨리 교체시켰다.
Dr. Lee 는 1977년 스웨덴 컵에 미국팀의 코치였었다.
미국 선수들은 경쟁상대인 노르웨이의 세미타올의 사용을 알아차렸다. 연습과 워밍업동안, 알려지지 않은 Dr. Lee의 학생은 "Shammy" 대신에 그들의 코치 이름인 "Sammy" 로 부르기 시작했다. 노르웨이 선수가 준것은 Dr. Lee 를 통해 그의 선수인 Greg Louganis에게 전해졌다. 그는 즉시 이것이 훌륭한 발명품 인것을 알았다. 타올의 이름과 유사성은 결국 새로운 상품개발로 이어지는 계기를 맞았다.

Sammy스포츠타올은 '참피언의 선택' 이라는 이름으로 1979년 비지니스의 첫문을 열었다. Dr. Lee 는 1,200개의 타올로 사업을 시작했다. Roz는 각각의 제품포장에 'The Sammy'라고 찍어서 집어넣었다. 두번째 3,000개의 주문은 제조업체의 직접적인 동의를 받았다. 처음의 비지니스는 느렸다. 모든 것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아무런 광고조차 없이 해결되었다. 그레그 루가니스는 그것을 쓰기 시작해서 다른 다이빙 선수들에게 주기 시작했고 그것이 그들이 성장해 나간 방법이었다.
폴리비닐 화학성분 으로 만든 Sammy 타올은 바르게 보관되면 3년 혹은 4년 사용할수 있다.
타올은 보관튜브에 넣어서 두기전에 완벽하게 행궈두면 된다. 오랜기간 사용하지 않을때는 캡을 씌우기전에 완벽하게 말려서 보관하면 된다. 곰팡이가 손상을 입힐지라도 염소는 Sammy 타올을 지켜주는데 도움이 된다.
Sammy 타올은 미국에서 주요하게 팔리지만, 이것은 역시 많은 세계적인 수중 훈련생에게 사용되었다. 새로운 색이 추가될 때마다 Sammy 타올의 주문은 증가한다. 처음에는 염색기술의 발달의 어려움 때문에 오리지널 칼라는 황갈색 이었다. 나중에 밝은색상의 제품은 푸른색, 핑크, 초록, 복숭아, 노란색, 보라빛과 빨강색 등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료 출처 : www.thesammy.com
참고자료
Dr. Sammy Lee - 한국계미국인 2세로 독립투사였던 아버지(이승만대통령과 절친)를 두었다.
5 feet 키의 단신이며, 유색인종으로 미국에서의 차별적인 운동환경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1947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바 있고
1948년(당시 28세) 올림픽 10m 플랫폼 금메달, 3m 스프링보드 은메달
1952년(당시 32세) 올림픽 10m 플랫폼 금메달
back-to-back 기술로 금메달을 수여한 최초의 남자 다이빙 선수
Bob Webster/Greg Louganis등의 코치로 많은 메달을 획득한 바 있음.
Sullivan(아무츄어 선수상) 상을 수상한 유일의 아시아계 미국인
현재 80을 넘긴 나이로 계속 활동중이며, Sammy Sports Towel 시장 석권
Greg Louganis - 사상 최초로 플랫폼과 스프링보드 등 올림픽 다이빙 2종목을 2연패
1984(LA) 1988(서울)
56년만에 플렛폼과 스프링보드 2관왕의 첫번째 남자선수.
1988 서울올림픽때 다이빙대에 머리를 부딪치는 부상을 입고 투혼을 발휘
1985년 아마추어 선수로써 Sullivan 상 시상
1988의 올림픽에서 올림픽의 정신의 이상을 가장 대표하고, 유별나게 뛰어난
용기를 보여주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의미심장하게 공헌했던 올림픽의 운동
선수로서 그는 맥스웰 하우스/ 미국 올림픽 위원회 정신 시상을 받았다.
자료번역 및 부연설명 : 김재중